레깅스 열풍에 없어서 못 팔더니…한방에 떴다가 추락한 회사 [안재광의 대기만성's]

입력 2023-01-18 14:25   수정 2023-09-06 15:53


▶안재광 기자
효성티앤씨는 2021년 1조42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습니다. 순이익도 1조원을 넘겼어요.


그런데 이 회사 가치는 고작 1조원대 중반이죠. 2021년 이익을 기준으로 주가수익비율, PER은 1.6배쯤 합니다. 뭔가 말이 안 되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한국 주식 PER 평균이 대략 10배쯤 하죠.


이번 주제는 코로나 특수로 한방에 떴다가 추락한 효성티앤씨입니다.


효성티앤씨는 스판덱스 세계 1위 기업입니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30%가량 합니다.


스판덱스는 옷 만들 때 쓰는 섬유의 한 종류죠. 고무줄처럼 잘 늘어나고 쉽게 끊어지지 않아서 속옷이나 수영복, 요가복 같은 기능성 옷에 많이 쓰였고 요즘는 교복, 양복, 청바지 같은 일상복 소재로도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슈퍼맨 같은 히어로들이 입고 있는 쫄쫄이가 이 스판덱스로 만든 것이죠.


한국이 제조 분야에서 요즘 대부분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는데 효성이 1위를 유지하는 게 대단해 보이긴 합니다. 어쨌든, 이 쫄쫄이 스판덱스는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갑자기 수요가 늘어납니다. 사람들이 집에 더 오래, 더 많이 머물면서 편안한 옷을 선호했는데 스판덱스로 만든 옷이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레깅스 판매가 급증을 했는데요. 레깅스는 원래 일상복은 아니었죠. 요가 팬츠로 불렸어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일상복처럼 되면서 여기에 들어가는 스판덱스 수요가 폭발했습니다.


룰루레몬 같은 요가복 브랜드가 요즘 백화점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보셨죠.


당연히 스판덱스 가격이 폭등하고 재고는 확 줄었습니다. 스판덱스는 중국이 가장 많이 만들고, 중국이 가장 많이 사는데 중국 내 스판덱스 가격이 킬로그램(kg)당 3만위안 안팎 하던 것이 2021년 중순 8만위안에 육박했습니다. 반년 만에 2.5배 오른 겁니다.


반면 재고는 공장들이 보통 50일 치 정도 가져가는데 열흘 치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말 그대로 없어서 못 파는 제품이 됐습니다.


원래 효성티앤씨는 코로나 사태 초기에 공장을 못 열었어요. 당시에는 공장들 상당수가 셧다운, 그냥 닫아야 해서 수요가 폭발하는데도 제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경쟁사인 중국 회사 공장이 계속 닫혀 있는 상황에서 효성은 중국 이외에 베트남, 터키, 인도, 브라질 같은 곳의 공장을 빨리 열어서 발 빠르게 대응합니다. 공장을 해외 여러 지역으로 다변화했던 것이 먹힌 거죠.


이렇게 대응을 잘해서 2021년에는 분기당 영업이익 4000억원을 넘깁니다. 원래 400억원 안팎 벌었는데 10배나 넘게 더 번 것이에요. 그래서 그 해 전체 이익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습니다.


당시 영업이익률이 30%를 넘었는데요. 제조업에서 사이클이 크고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반도체 같은 제품을 제외하고 이익률 30%를 넘기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한마디로 떼돈을 번 것이죠.


이때 얼마나 잘 나갔는지 9만원 하던 주가가 1년 만에 90만원을 넘겨 10배 이상 올랐습니다.


당시 일부 증권사에선 목표 주가를 140만원으로 제시하기도 했어요.


산이 깊으면 골도 깊다고 했습니다. 모든 산업이 그렇지만 호황 때는 수요가 폭발하고 공급은 부족한데요, 반대로 불황기에는 수요가 줄고 공급은 급증합니다. 스판덱스 또한 이 경로를 고스란히 밟습니다.


코로나 봉쇄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풀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서 스판덱스 수요는 감소했죠. 반대로 공급은 넘쳤습니다. 가격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얼마나 업황이 극적으로 꺾였는지, 효성티앤씨는 작년 3분기에 영업적자를 1400억원 넘게 냈어요. 분기당 4000억 넘게 벌다가요. 증권가에선 작년 4분기에도 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좋았던 시절은 다 갔습니다.


효성티앤씨의 실적 악화는 효성그룹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효성그룹의 지주사 효성은 효성티앤씨의 대규모 적자 탓에 작년 3분기에만 500억원대 손실을 기록합니다.


효성은 국내 재계 서열 30위쯤 하는 꽤 큰 회사인데요, 이런 대기업이 휘청휘청할 정도로 타격이 컸습니다.


효성티앤씨의 실적 악화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입장에선 굉장히 뼈아플 겁니다. 2017년 부친 조석래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총수가 된 조현준 회장은 계열사 중에서도 효성티앤씨 경영에 특히 신경을 썼습니다. 효성티앤씨가 효성의 효시 동양나일론의 사업을 이어 받아 상징성이 있는 데다 매출, 이익 규모도 가장 컸기 때문인데요.


조현준 회장이 지주사를 제외하고 사내이사를 맡고 있는 유일한 계열사가 효성티앤씨입니다. 효성티앤씨만큼은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효성티앤씨의 실적 악화는 고스란히 조현준 회장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조현준 회장이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요. 형제의 난으로 불렸죠. 동생 조현문 전 부사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조현준 회장에게는 두 동생이 있는데, 바로 밑에 동생이 다툼을 벌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고, 둘째 동생이 조현상 현 효성그룹 부회장입니다.


조현준 회장과 한 살 터울인 조현문 전 부사장은 서울대 재학 시절에 신해철 씨가 결성한 무한궤도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와 미국 로펌을 다녔습니다. 차남이고, 개성도 강해서 경영 후계자는 아닌 듯 보였죠. 참고로 효성은 아직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조현문 전 부사장은 IMF 사태 직후인 1999년 부친 조석래 회장의 부름을 받고 효성에 입사했는데, 얼마 안 가서 부친과 형의 경영 방침에 맞서다가 2011년 결국 방출, 아니 축출됐습니다. 요약하면 조현준 회장은 조현문 전 부사장과의 다툼에서 승리한 뒤 자신이 제대로 그룹을 이끌 수 있는 적임자란 것을 입증해야 할 나름의 책임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봉에 그룹의 모태이자 핵심인 효성티앤씨가 있습니다. 효성티앤씨 실적을 확 돌려놓아야 경영자로서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조현준 회장은 그럼 어떻게 위기를 돌파한 것인지 궁금한데요. 삼성 전략을 따르는 듯 합니다.


삼성전자가 현재 반도체 가격 하락 탓에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오히려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려서 경쟁사를 압도하는 ‘초격차 전략’을 쓰고 있죠. 이 전략은 이전에도 효과를 봤었기 때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상당한 확신을 가진 듯합니다.


효성도 비슷합니다. 스판덱스 시장 세계 1위 자리를 굳히기 위해서 중국, 브라질 등 해외 공장 증설을 꾸준히 늘리고 있습니다.


1위 효성이 적자를 낼 정도면 그 밑에 회사들은 어려움이 더 클 것으로 보이는데, 효성이 업계의 구조조정을 촉발해서 나중에 승자독식으로 가겠다 이런 전략을 짠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구조조정이 이미 일부 되고 있습니다. 스판덱스 시장점유율 5위권 내 기업을 제외하고 나머지 업체 수가 2015년 22곳이나 있었는데 작년 9월 말 기준 13곳으로 확 줄었습니다. 9곳은 망한 거죠. 이들의 점유율 또한 39%에서 23%로 반토막이 났습니다.


현재는 중국 상위권 기업조차 스판덱스 공장 가동률이 50% 안팎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산됩니다. 공장의 절반은 놀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상태라면 1~2년 안에 스판덱스 업계가 싹 다 정리될 것 같기도 합니다.


효성을 분석하고 있는 증권사들도 요즘에 상당히 긍정적인 투자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주가가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보는 것이죠.


중국 중소 업체 상당수가 공장 가동을 포기하면서 올해 스판덱스 공급 물량이 전년 대비 40% 이상 감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공급이 줄면 가격이 안정되고 그럼 1위 기업이 그 수혜를 상대적으로 크게 볼 수밖에 없겠죠.


또 스판덱스 최대 시장인 중국이 코로나 봉쇄를 풀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복 소비에 나설 경우 패션 제품 판매가 늘어서 스판덱스 같은 섬유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예측도 됩니다.


물론 2021년처럼 마진을 30%씩 남기는 것은 앞으로 힘들 수 있겠지만 이익률이 안정화될 가능성은 높다고 애널리스트들은 보고 있습니다.


조현준 회장이 섬유 사업 뿐 아니라 그룹 전반을 앞으로 어떻게 경영할지도 관심이 가는데요. 창립 60년이 되는 2026년에 맞춰서 새로운 비전과 로고를 밝힐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습니다. 사실 효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별로 없긴 하죠. 로고는 옛날 축협 로고처럼 생긴 것도 같고.


아무리 섬유, 타이어 코드, 아라미드 같은 산업용 소재를 만드는 회사라고 해도 뭔가 자신의 정체성을 사람들에게 잘 알리고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조현준 회장은 기존에 효성이 하는 사업 이외에 자신이 직접 주도해서 새로운 사업도 하고 싶어 하는데요. 바로 수소입니다.


수소는 미래 에너지로 꼽혀서 효성뿐만 아니라 국내 10대 대기업 거의 모두가 뛰어들었습니다. 효성은 효성화학이 수소를 생산하고, 효성중공업이 기체 상태인 수소를 운송하기 좋게 액체 상태로 만드는 공장을 짓고, 효성첨단소재가 탄소 섬유로 수소차 연료탱크를 만들고 수소차 충전소도 운영하겠다 이런 계획입니다.


다만 수소 사업은 사업화해서 실적으로 잡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조현준 회장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추진을 하느냐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주가는 수소 사업의 안착 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하겠죠.


코로나 특수를 본 여러 산업들이 있습니다. 음식 배달, 온라인 쇼핑, 백신 제조업 등등. 이 가운데 스판덱스 섬유 사업만큼 극적으로 업황이 좋았다가 확 꺾인 것도 없는데요. 한국이 중국보다 우위에 선 몇 안 되는 산업인 만큼 부디 잘 턴어라운드해서 예전, 아니 그 이상의 실적을 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쫄쫄이 세계 1등 효성티앤씨 주가 100만원 갈지 눈여겨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예수아·이하진 PD
촬영 박지혜·예수아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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